
평일에는 출근 전, 주말에는 조금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중랑천에 가 달리기를 합니다. 달리기는 힘들지만 참 재밌는 운동이에요. 달리는 킬로 수가 늘어날수록 느껴지는 감정이 조금씩 다르거든요. 초반에는 비교적 체력이 남아있으니 달릴만 합니다. 주변 경치와 이제 막 뜨는 태양을 보며 마음이 비워지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 구간이 지나가면 호흡이 점점 가빠옵니다. 심박수는 빨라지고 머리와 몸에 점점 땀에 젖어요. 다리가 조금씩 무거워지기 시작하고 엉덩이는 뻐근해집니다. 그때부터는 주변을 둘러보는 횟수가 급격하게 줄어듭니다. 당장 앞만 보고 달리게 돼요. 혹은 땅바닥에 벌레를 혹시나 밟지는 않을까 밑을 보면서 달립니다. 중반~후반부가 되면 이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습니다. 그냥 길이 있고 저는 그저 달릴 뿐이라는 생각만 듭니다. 호흡도 코로만 했었는데 이때가 되면 코로 들이마시고 입으로 내뱉습니다. 시야의 양끝에서는 땀방울이 떨어지는 것도 보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끝나지 않을까 싶은데 여전히 목적지는 보이지가 않습니다.
제가 주로 뛰는 코스에서는 이때가 되면 직선 코스가 나옵니다. 탁 트인 시야와 옆에 보이는 강. 아우토반 부럽지 않게 깔린 아스팔트가 있습니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그런 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옵니다. 오히려 직선 코스는 제게 이런 마음이 들게 합니다. '그냥 여기까지만 뛸까?'. 목적지가 당장 눈앞에 보이지도 않고 힘이 드니까요. 차라리 옆에 나무가 있고 평소에 자주 볼 수 없던 새가 있거나, 강에 물고기가 튀어 오르는 것이 보인다면 그것들을 보면서 가느라 힘이 덜 들 텐데. 하지만 항상 그렇듯 길이 있고 나는 달린다는 마음으로 완주합니다. 직선 코스를 지나고 나면 바로 목적지가 보입니다. 사실은 그렇게 많이 남지 않은 거리인데 직선 코스에서는 왜 이렇게 힘이 드는지. 땀으로 셔츠가 흠뻑 젖고 머리칼은 땀에 젖어 들러붙어 있지만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다 괜찮아집니다. 무겁던 몸이 상쾌함과 뿌듯함으로 채워지고 가벼워집니다.
직선 코스를 달리며 삶에 위로를 얻습니다. 더 많은 예시가 있지만 그중 하나인 영어 공부를 예로 들까요. 올해부터 영어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곧 6월이니까 이제 곧 6개월 정도가 되겠네요. 대한민국 정규 교육과정을 거친 분들이라면 영어의 악명을 다들 알고 계실 거예요. 학교에서 지겹도록 배우는데 정작 외국인과 대화하려면 귀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 입으로 내뱉기는 더 힘이 듭니다. 저도 마찬가지였고요. 학창 시절 영어 성적이 좋은 편도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평일에 한 시간, 주말에 두 시간씩 영어 공부를 합니다. 6개월 동안 지키지 못한 날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꾸준히 지켰습니다. 과연 저는 지금쯤 외국인과 프리 토킹을 할 수 있을까요?
물론 못합니다! 어제 외웠던 문법, 단어를 오늘 그대로 까먹은 저에게 매일 좌절할 뿐입니다. 심지어 오늘 복습한 내용을 일주일 뒤에 다시 본다면 또 잊어먹고 어버버거릴 겁니다. 간단한 문장도 제대로 말하지 못하는데 영어로 프리 토킹을 할 수 있을까? 지금 이렇게 공부하는 게 효과는 있는 걸까? 라는 의심이 정말 많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저는 달리기의 직선 코스를 생각합니다. 주변에 아무것도 없고 직선 도로만 있다고 생각하면 혼란스럽잖아요. 심지어 앞에서 계속 뛰어왔으니, 힘은 드는데 목적지는 보이지도 않고,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오고. 그러면 저는 그냥 영어 공부를 이어갑니다. 의심이 지워지는 건 아니에요. 좌절감이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내일도 오늘 배운 거 몇 개는 까먹겠지, 이 상태로 6개월 더 한다고 해서 외국인과 프리 토킹하는 건 여전히 불가능하겠지, 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냥 해요. 길이 있고 나는 달린다는 마음가짐으로요. 달리기하는데 이유가 없듯 영어 공부를 하는 이유도 지워버리고 하면 오늘의 공부 시간을 지키게 됩니다. 그리고 얻는 약간의 뿌듯함이 보상이 됩니다.
마지막에 생각해요. 직선 코스에서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그곳을 지나고 나면 항상 목적지에 도착하듯 영어 공부를 하다 보면 외국인과 프리 토킹이 가능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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